돌아다 보니 어젯밤 분명히 건너방에서 재웠던 아이가
그의 등짝에 딱 달라붙어 잠을 자고 있는게 아닌가?
그는 돌아눕느라 아이를 다치게 한건 아닌지 벌떡 일어나 아이를 살폈다.
아이는 아직도 잠 삼매경에 빠져 있어 다행이었다.
그는 믿을수 없어 하며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아이는 쌔근거리며 잘자고 있었다.
자신에게 한껏 몸을 의지하며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가슴 한구석에서 뭉클한 감정이 뭉개뭉개 피어났다.
전혀 갖지 못했던,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
그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약간 당황했지만
금세 그 감정을 받아들이며 아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어제 먹다 잠들어서인지 음식이 입가에 남아 지저분해 보였지만
통통하고 귀여운 모습이 너무 예뻐서 뺨을 꼬집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거실로 나와보니 다들 아침식사시간 준비와 청소마무리를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MR KIM이 그를 발견하고는 다가와 물었다.
"잘 주무셨습니까?"
"네.. 애가 제방에서 자는데 어떻게 된건지..ㅎㅎ..
애 깨울까 봐 방금 나오는 길 입니다."
"그래요? 허허.. 녀석이 꽤 BOSS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아이가 깨면 먼저 씻겨야 할꺼 같아요. 혹시 집에 애가 입을 만한 옷이 있을까요?"
"안그래도 신세계 백화점 매니저에게 연락해서 여자아이가 입을 만한 옷과 책가지를 주문해 놓았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깨기 8시전에 도착할 껍니다."
"잘 하셨네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재쪽으로 들어가 전면에 설치된 5개의 대형 컴퓨터 스크린을 켰다.
JIN SOFTWARE.CO 라는 거대한 로고와 함께
스크린에는 여러가지 증권그래프와 뉴스, 문화, 엔터테이먼트의 각종 최신뉴스가 떠올랐다.
MR KIM이 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그는 잠시 스크린에서 쏟아지는 정보를 훝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 증권그래프는 안정적이었고 오늘 하루도 별 일 없어 보여 안심하고
PEOPLE CONNECT의 화상 화면으로 길버트를 연결 했다.
밤 중이었어도 길버트는 항상 늦게까지 자지 않고 있을 게 뻔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길버트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잠을 못자 뚱한 표정으로 화면에 나타났다.
"여.. 길버트.. sup, bro?""
"geez.. 지금 게임 하나가 안풀려서.. 어떻게 풀어 나갈지.."
"뭔게임인데?"
"리니지에서 나온 게임인데 꽤 재밌네..
조금은 우리꺼 배낀 느낌이 나긴 하지만 괜찮아.. "
"really? 나도 그거 해봤는데 괜찮게 나왔더라..
우리 신제품 개발은 어떻게 진행 되고 있대?"
"실리콘 벨리에 있는 직원들이 거의 마무리 작업중이야..
출시하면 세계 대전 한번 해볼까?"
"한번 해 보기는 했어? 서버 잡아 먹는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아? "
"안그래도 그거 보안 중이야.. anyway, 한국은 어때?"
"좋아.. 정말 오랜만에 와서 기분이 이상해..ㅎ.. 게다가 오자마자 사고쳤어.."
"무슨사고?"
"애(BABE) 하나를 낚았지 뭐야.."
"뭐 애?? BABE??? GOSH..거기 가서도 연애 사업 중이야??
맘에도 없는 연애 그만 하지.?"
"ㅎㅎ.. 그게 아니고 정말 babe야.. 애가 하나 길을 잃고 돌아 다녀서 보호 중이야.."
"really?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대?"
그때 밖에서 애가 자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그는 서재문을 열었고 메이드가 아이를 안고 달래는 모습을 발견했다.
서러운 듯이 울어 대던 아이는 진욱을 보자 마자 그에게 팔을 뻗었다.
그리고 진욱이 안자 마자 울음을 그치며 훌쩍 였다.
"아이구.. 아이가 보스만 찾네요.. 이를 어째.."
아주머니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그녀가 BOSS의 방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를 듣고 달려가 애를 달래 보았지만
아이는 그냥 마구 울어 댈 뿐이었다.
혹시라도 서재에 들려서 BOSS의 아침시간을 방해 할 까봐서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며 달랬지만 소용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이를 안고 서재로 다시 들어갔다.
훌쩍이던 애가 스크린에 나온 길버트의 얼굴을 보더니 놀라 진욱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ㅎㅎㅎ.. 쟤야?"
길버트가 재밌다는듯이 껄껄 웃었다.
"응.. 아주 귀여워.."
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욱이 말했다.
아이에게 길버트의 얼굴을 보여주려 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저항했다.
"너 보기 싫은가 보다. ㅎㅎ.. 너가 못생겨서 그래.."
"ㅎㅎㅎ.. GOSH.. 너가 그러고 있는거 보니까 정말 놀랍다..ㅎㅎㅎ"
"웃지마.. 애 놀란다니까.."
아이를 매우 소중하게 다루는 것을 보고는 길버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ㅎㅎ.. 너 그러는거 못 봐 주겠다..ㅎㅎ.... 어쨌든 당분간은 애아빠 노릇 하느라 힘들겠네.."
"그래서 말인데... 보호자가 나타날 때까지 나 일 못해.. 애를 봐야 할꺼 같아. ㅎ..
애가 나만 찾네.ㅎㅎㅎ."
"JEJUS,, 너만 찾는다고? 애가 아직 세상 물정 몰라 그러지..ㅎㅎㅎ"
"SHUT UP!! 암튼 잘 좀 부탁해.. "
"SURE.."
길버트가 사라지고 다시 최신 뉴스화면이 떴다.
아이는 조용히 그에게 매달려 있었다.
애를 씻겨야 하는데 매우 난처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목욕탕에 들어가게 해야 했는데
그순간 조금 젊어 보이는 관리인 아가씨가 서재 앞을 지나가는게 서재 유리문 너머로 눈에 들어왔다.
이모도 젊었으니까 아이가 젊은 여자 말은 듣지 않을까 하고
밖으로 나가 그녀에게 애를 씻기라 지시했다.
다행히 그의 예상이 적중 한 것 같았다.
아이는 순순히 그녀를 쫒아가더니 목욕탕으로 함께 들어갔다.
때마침 그의 개인 비서 CHARLIE가 도착해서 그들은 같이 서재로 다시 들어왔다.
CHARLIE도 MR KIM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개인적으로 고용한 아주 뛰어난 한국인 비서였다.
여러 개국 언어에 능통했고 학위만도 3개나 된 수재였다.
그는 진욱과 함께 일하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진욱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했다.
MR KIM과 마찬가지로 진욱보다는 5살이나 많았지만
가족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나머지 국제 뉴스들을 확인 하고나서 CHARLIE가 전해 주는 한국지사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회사도 문제없이 잘 돌아갔고 직원들도 열심히 잘 일하고 있다는 평범한 업무 보고 였다.
"그런데 어제 공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서 청와대에 연락 했는지
미국 대사님과 함께 오늘 저녁 식사 하실수 없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삼성하고 LG에서는 어찌 알았는지
사장단 주재로 서로 개인적인 접촉을 하실수 없냐고 의중을 묻는 연락을 해왔구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본사에서 충분한 의견을 조율 하기 전까지는 아직 아무도 만날 수 없어요.
충분한 재고를 거친 후에 만나야 뒷 탈이 없을 꺼구요.
본사 기획홍보팀에 연락해서 어찌해야 하냐 물어 보세요.
어느 쪽으로 여론을 흘려야 유리한지.. 청와대 건은...음....
거절 하세요.. 비공식방문인데 번잡하게 하는것 싫다고 정중히.. 예의 바르게... 알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할까요?"
"애가 좋아 할 만게 뭐가 있을까요?"
엉뚱한 질문에 허를 찔린듯 CHARLIE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졌다.
"애가요? 아.. MR KIM이 얘기한 아이 말입니까? 그냥 경찰서로 보내심이 어떨런지.."
"아뇨.. 더이상 그건 말하지 맙시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여러 명한테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났다.
BOSS가 짜증을 내자 CHARLIE도 더이상 말을 못 잇고 입을 다물었다.
"애들이 좋아하는건 놀이동산이겠죠? 좀 조용한 곳 없을까요? 번잡한 곳 말고요.."
"글쎄요.. 저도 딱히 아는 곳이 없어서... 아침식사 끝나시기 전까지 조사해 놓겠습니다."
"그러세요."
아침식사를 위해 다이닝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