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상쾌한 봄향기를 마시려 벤틀리 차창문의 버튼을 눌렀다.
스르르 창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선선하고 한국에서 나는 특유의 봄 냄새가 그의 코끝을 간지럽혔다.
벛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핀 길이 앞에 아름답고 한폭의 풍경화 마냥 쭈욱 하고 펼쳐졌다.
개인비행기를 타고 비공식적으로 17년만에 다시 찾은 한국에서
제일 먼저 그가 가고 싶은 곳은 역시나 월미도 였다.
이제는 가슴이 시리고 아팠던 것보다
이제는 그녀에 대한 기억이 한국에 대한 기억과도 같았다.
그녀를 지우고 한국에 관해 생각 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의 벤틀리를 운전하러 회사에서 마중나온 한국인 운전기사에게
월미도로 갈 것을 지시하고 그는 가죽시트에 깊게 몸을 기대었다.
그일이 있고 3년후 그날,
아버지와 예슬과의 약속을 지킨 그는
그녀와 만나기로 약속했던 장소에
혼자 아무도 모르게 미국에서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하루,이틀, 삼일을 그 장소에서 하루 종일 기다렸건만
그녀는 모습을 나타 내지 않았다.
그는 깊은 절망감과 함께 비행기에 올랐었다.
아직 어린 그가 아무 연고도 없이 더이상 그녀를 찾을 길은 없었다.
어떻해서든 지켜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그렇게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버렸다.
그이후 그녀를 잊지못한 17년은 그에게는 너무 길고 지루했지만
그녀와 헤어진 현실의 17년은 그에게 너무나 바쁜 세월이었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물불 안가리고 공부에 올인했다.
그리고 평소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MIT공대 경영학과와 computer science를 double major로 졸업하고
아버지의 IT회사에 인턴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경험을 쌓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회사는 보안 프로그램 전문이라 그의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원래부터 게임 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아버지에게 15만불을 빌려 공대 친구이자 게임 덕후들인
computer science학과의 에릭과 같은과 대학원생 천재, 길버트와 의기투합하여
조그만 JIN SOFTWARE.CO라는 회사를 차렸다.
그들은 그 회사에서 밤낮을 세우며 새로운 게임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시장에 내놓았고
나오자 마자 그 게임은 전 세계적인 대히트를 쳤다.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신과 인간의 전쟁게임을 내용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은
전세계 게임머들을 열광케 했고 그와 친구들은 연이은 연계프로그램을 만들어 출시해 초대박 행진을 이어갔다.
엄청난 돈과 명성이 그들에게 쏟아졌고 그들의 사업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커져 갔다.
회사 설립 8년만에 직원이 300명이나 되는 큰 사업채로 커져 갔고 전세계 연간 매출액만 1 billions 기록했다.
년 매출 10 millions 의 아버지의 성공은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로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아버지의 회사도 그의 계열사로 흡수되긴 했지만...
그 이후에도 사업은 여러 가지 전문분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패북형태의 웹싸이트 People connect 와 트위터를 능가하는 wetalk, 웹매거진을 비롯해
보안프로그램과 비지니스 서포트, 금융등 그들이 취급하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이제는 그들이 따로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돈이 제발로 굴러들어오는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돈과 명예가 따르니 당연 그들은 포츈잡지와 월스트리트 메인을 장식할 정도로 미국에서 대단한 주류인사가 되었다.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경제잡지와 시사잡지에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다뤄졌고
각계의 기자와 파파라치들이 그들의 스캔들을 캐기 위해 그들을 쫓아 다녔다.
에릭은 일치감치 하이스쿨때부터 사귄 에밀리와 혼인을 했고
길버트는 에니메이션 덕후 기질만 가진 워낙 쑥맥이라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다.
기획홍보팀에서는 회사 홍보를 위해 그나마 싱글인 진욱에게 여러 만남을 주선했다.
진욱은 여느 아시안 남차처럼 약해빠진 약골이나 nerd타입의 남자가 아니었다.
좀 마른 듯했던 체구는 전문 트레이너의 훈련덕에 탄탄한 복근을 유지하게 되었고
식단도 호텔 특급주방장의 식단으로 조절 되어 늘 적당하게 근육질을 몸매를 유지 할수 있었다.
옷도 항상 그의 스타일리스트가 최고급 정장에 최고급 스타일로만 맞추어 주었고
매너 학습은 물론 그의 이미지 메이커가 따로 상주할 정도 였으니
그는 단연 여성잡지에서 the sexiest man on earth에 상위권에 랭크되는 hot guy로 떠올랐다.
아프리카 기아아동 기부형태로 진행된 그의 벗은 몸이 실린 코스모폴리탄은 그달 최고 판매부수를 성취하기도 했다.
홍보팀이 주선한 데이트 리스트중에는 헐리우드 유명인사도 있었고 정치, 경제 심지어 유럽귀족들도 있었지만
진욱에게 그저 그들은 회사 홍보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오는 여자 마다 못한다고 몇몇 여배우와 유럽에서온 공주와는 사뭇 진지하게 사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하게 만난 여자는 없었다.
그냥 그는 어느새 결혼에 회의적인 생각이 들고 있었다.
아직 33인 나이도 나이지만 혼자인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업도 잘되어 가고 여자들은 손만 뻗치면 있는 곳에 있고 그가 원하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그는 그가 결혼안하는 이유가
어쩌면 늘 가슴한구석에 남아있는 그녀와의 기억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다.
누구를 만나도 그녀만큼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이가 없었고
그녀만큼 그의 애를 타게 했던이는 없었다.
월미도로 가는 길을 바라보며 그는 그때 처음 그녀와의 데이트를 떠올렸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 기억만은 아직도 새록새록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이렇게 기나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녀는 어떤 모습일까? 그녀는 무슨 삶을 살고 있을까?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직도 나를 잊지 못하고 있을까?
나처럼 다시 만나볼수 있을꺼라 희망을 갖고 살고 있을까?
우리가 아파했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가 한참 지난 추억을 되씹고 있을때,
그의 벤틀리가 사거리 신호등에 멈추어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차옆으로 스쿠터 한대가 와서 미끄러지듯이 자연스레 섰다.
무덤덤하게 뒷자석에서 차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그에 눈을 끄는 것이 있었다.
서너살이나 되었을까?
제법 귀엽게 치장한 귀여운 헬멧을 쓴 여자아이가 스쿠터 뒤에 매달린채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방긋 웃고 있었다.
그는 순간 약간 무안했지만 같이 미소로 반겨주었다.
꼬마는 너무 귀여운 얼굴로 방글방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도 기분이 좋아져 손을 흔들 정도로 꼬마의 미소에 빠져 들다가 문득 스쿠터를 운전자를 바라보았다.
헬멧을 써서 얼굴은 안보였지만 젊은 엄마인지 몸매가 아주 예술이었다.
앉아 있는 자세때문인지 청바지가 딱 달라 붙어있어
그녀의 힙라인이 굉장히 섹시하게 보였다.
평범한 티셔츠에 가디건 차림이었지만
안에 입은 얇은 티셔츠탓인지 가슴라인도 매우 볼륨감이 있어 육감적인 몸매가 드러나고 있었다.
뒤에 매달린 아이가 엄마를 닮았다면 분명 엄마도 꽤 미인일 것이었다.
진욱은 호기심이 들어 그녀를 자세히 보려 했다가
곧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진한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죄책감에 얼굴을 붉혔다.
신호를 받자 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스쿠터가 먼저 출발해 가버리고
진욱은 순간 자신에게 어이없어 고개를 흔들며 피식 웃었다.
"괜찮으십니까?"
유니폼을 입은 인상좋은 중년의 운전사가 백미러로 웃고 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아,, 괜찮아요.. 계속 운전하세요.."
그는 머쓱해져 차창을 바라보는 척을 했다.
차는 그대로 달려 월미도에 도착했다.
운전사에게 잠시 걷겠다 말하고는 혼자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물어 가는 해가 수평선 너머로 뉘엇뉘엇 넘어가고 있었고 가로등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산책로는 그 이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음식점들도 그때는 주로 레스토랑 위주였던 것들이 횟집 위주로 바뀌었고
울퉁불퉁했던 벽돌도로 산책길도 아스팔트 타일도로로 새로 단장되어 깔끔하게 변해 있었다.
다행히 그가 그녀와 즐겼던 환한 네온사인에 뒤덮인 월미도 팡팡이랑 바이킹은 그대로 였다.
그때의 기억에 그는 놀이기구들의 무서움에 살짝 몸서리를 쳤다.
지금 봐도 아찔한 놀이기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타보고 한번도 다시 놀이기구 같은것을 타본적이 없었던것 같다.
그는 계속 걸으며 지난 기억들을 되짚어 보았다.
지금은 거의 다른것들은 생각나지 않지만 한가지 단연코 기억나던 것은
그녀와 보았던 해지던 노을의 월미도 였다.
그는 천천히 바닷가쪽으로 걸어갔다.
비릿한 바닷냄새가 바람을 타고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와는 다른 느낌, 다른 시간이지만
그녀가 옆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때 그의 상념을 깨는 어린여자아이의 겁에 질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어린 여자아이가 혼자서 엉엉 울면서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아이는 마치 길을 잃어버린 것처럼 서럽게 울어대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행인들이 그저 무심히 그아이를 지나치고 있었다.
횟집 호객 행위를 하는 아주머니 하나가 애를 보고 뭐라하더니 그냥 관심을 둘 여유가 없는듯
저녁장사를 놓치지않으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호객행위을 하는것이 보였다.
아이는 겁에 질린듯 더욱 서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진욱은 잠시 어찌할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다른 사람들처럼 모르는척을 할까 하다가 아이울음소리가 너무 맘아프게 들렸다.
신경이 쓰인 그는 드디어 결심을 하고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