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 증후군 6
chapter 6
삼년후,
"이 10호 환자는 원장님이 특별하게 관리하는 사람이니까 조그만일이라도 빠지지 말고 보고하도록해요. 첫날이라고 정신줄 놓지 말고요.."
"네..명심하겠습니다. 이선명주임님"
남자수간호사의 듣기좋은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훤칠한 키에 드물게 근육질의 몸매를 파란 간호사유니폼에 감추고 있는 그는 영국에서 간호사과정을 마치고 온 엘리트급 남자였고 주로 vip를 전임으로 담당하고 있었다.
조각같은 콧날과 잘생긴 아이돌 못지않은 외모에 좋은 목소리를 가진 그는 병원내에서 여느 닥터들 보다 더 인기남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도 그 상황를 즐기듯 늘 그의 얼굴에는 친절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왠간한 간호사들과 여의사의 대시에도 한번도 스캔들을 퍼뜨린적은 없었다.
그런 그와 첫날부터 함께 일하게 되어 흥분되기도 했지만 이제 막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맡은 첫임무인지라 효정의 각오도 대단했다.
효정은 누워있는 환자를 바라보았다.
온갖 복잡한 기계들이 그의 몸에 연결되어있었고 약기운에 깊은 잠을 자는 지 움직임이 없었다.
한 삼십대 중 후반정도 되었을까.
키는 무척 컸지만 말라보였고 그나마 그의 큰 통뼈 체격때문에 전에는 덩치가 엄청 컸을 것만 같았다.
"어머어머, 어쩌다 이렇게 되었대요?"
효정의 호기심어린 표정에 선명은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들 궁금해 하긴 하죠. 하지만 말할수 없어요. 환자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대학에서 그렇게 배웠죠. 그쵸?"
"네."
"그럼.. 우린 쓸데없는 데 신경쓰지 말고 맡은 일이나 잘합시다.
10호환자상태는 늘 이런 코마상태예요. 즉, 우리가 달리 할께 없다는 거죠.
우리는 5시간 마다 안정제랑 혈압, 체온 이런 기본적인 것들만 매일 체크하고 원장님께 보고하면 됩니다.
어려운건 없을 껍니다. 단지 원장님 지인분께서 특별히 부탁하신거라 특별관리 대상입니다."
"네."
"욕창이 생길수도 있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번 몸위치를 바꿔줘야 해요. 혼자는 무리니까 그때는 저를 부르세요. "
"제가 혼자 할수 있을꺼 같은데요. 저 보기보다 힘쎈대.."
선명은 피식 웃으며 재밌다는 눈길로 장난스레 효정의 167센치의 통통한 몸매를 훝었다.
효정은 순간 챙피함에 몸이 작게 느껴지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황급히 챠트리스트로 얼굴 반을 가렸다.
"그러게, 힘세게 생겼네요.. 하지만 10호 환자는 보기보다 무거워요. 지난 김간호사도 엄청 힘들어 했거든요."
"참.. 김수연간호사는 왜 그만 두신거예요? 지난 실습때 잘해주셨는데."
그의 웃고 있는 표정이 신경쓰여 화제를 돌렸다.
"잘모르지만 집에 무슨 일이 있대요. 시골에 사시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거기 간병간다고 했어요."
"아.. 어쩌다가.. "
"여기에 본인을 김수연간호사가 추천한거 몰랐어요?"
"어머어머.. 그래요? 그랬구나.. 어머어머.."
"착하고 착실하다고 가기전에 추천하던데."
"어머어머.. 몰랐네요."
효정은 정말 깜짝 놀랐다. 실습기간때 그녀를 담당하긴 했지만 그렇게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실습끝나고 한두번을 제외하고는 학교 졸업과 자격증시험때문에 따로 연락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이럴줄 알았으면 연락이라도 자주할껄 하는 미안하고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어머,, 박효정간호사는 항상 어머어머를 입에 달고 사는 군요."
"어머어머.. 제가요? 어머어머.. 훕.."
선명이 효정의 말투를 흉내내며 따라하자 효정은 어쩔줄 몰라 하며 큰눈동자를 이리 저리 굴렸다.
그 모습이 우스운지 선명은 입가에 환한미소를 띄웠다.
그의 매력적인 깊은 보조개가 파이고 효정은 당황해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ㅋㅋㅋ.. 박효정 간호사 재미있으시네.. 역시 대학 갓졸업해서 그런가 활기차군요. 암튼 조그만 일이라도 저한테 먼저 연락해 주세요. 전 아래층 채혈실에 2,4,5호실 VIP 환자 검사결과 받고 담당의한테 보고하러 가야하니까 당분간 여기 못와요.
나머지 리스트 체크하시고 바로 데스크에 가서 확인하거 컴퓨터 환자챠트에 기록하세요.
혹시나 다른 호실 환자분들 요구 사항있으면 급한일 아니면 적당히 처리하시고요 어려우면 좀 미뤘다가 1시 근무 교대자이신 이채희 간호사한테 인계하세요.
어차피 VIP들은 건강검진 하는 정도로 오신거니까 그닥 힘든일은 없을껍니다."
"네.. 걱정 마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머어머.. 걱정되는군요.. 어머어머.. 어머어머.. ㅎㅎㅎㅎㅎ"
선명은 호탕하게 웃음 소리를 남기며 병실을 나갔다.
효정은 부끄러웠지만 병원 인기남인 그가 친근감을 표시한거 같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았다.
정신차려.. 정신차려...
그냥 친절한거야.. 친절..
저런 인기남이 나같은 평범녀를 좋아할리 없잖냐..
아.. 날 좋아해 주면 얼마나 좋아?
꿈깨자 꿈..
효정은 자신을 다그치며 리스트를 들고 누워있는 환자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기계를 통한 심장박동소리가 규칙적으로 병실안에 울리고 있었다.
그동안 수간호사가 얼마나 잘 돌봤는지 환자는 무척 깨끗하고 청결해 보였다.
잘생겼는데 일도 잘하네.. 괜히 인기남이 아니구나..
오랫동안 식물인간 상태인 환자 보는 것도 장난이 아닐텐데..
실습때 잠시 김수연간호사한테 얼핏 이환자에 대해 들은적이 있었던걸 기억해 냈다.
외국에서 범죄에 연루된 사건으로 머리를 크게 다쳤는데 거기 병원서 뇌수술 받고 몇번을 죽을 고비를 넘긴후에 겨우 살았는데 계속 코마상태가 계속되자 가족들이 후에 한국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들었다.
운이 없는지 한국에서도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병원도 몇군데를 전전하다 그나마 2년전쯤에 여기 인천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친분으로 받아준거라고.
몇년동안 계속 혼수상태로 깨어 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살인자라는 소리도 있고. 누구는 깡패두목이라고도 하고..
어떤이는 싸이코 킬러라는 소리도 있고.. 경찰이 수배중인 현상수배범이란 말까지,
별의별 흉흉한 소문이 병원내에 돌았다.
그래서 그 소문때문에 10호 환자는 간호사들 사이에서 기피대상 1호었다.
다행히 일년전쯤 이선명수간호사가 오고 이환자를 담당하고부터는 겨우 좀 나아진 상태다.
소문과는 상관없이 제 일을 하는 이선명수간호사 덕분에 환자한테는 그나마 다행한 일이기도 했다.
"젊은데 무슨 나쁜일을 하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여. 벌 받은 걸까여?
나쁜놈이면 안깨어나는게 맞는 건데여.. 왜그랬어요?
어머어머... 자세히 들여다 보니 꽤 괜찮은 얼굴이네여..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이렇게 잘생겼으니 빨리 일어나셔야죠.
10호 환자님은 이 효정천사가 담당한 첫번째 정식 환자니까 꼭 일어나셔야 해여.
가만.. 리스트에 적인 10호 환자분 성함이...
강.대.한씨네요.
오? 이제 서른하나예요? 어유,, 보기보다 어리시네.. 얼굴이 마르셔서 노안이예요... 피부관리도 하고 살좀 찌우셔야겠어여.
아직 삼십대 초반이니까 오빠라고 부르까요? 오? 좋다구여? 운이 좋으시네요..
ㅋㅋ..옛다,,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오빠라 불러드리죠.. 다만, 사람들 없을 때만이예요..
아셨죠? 대한오빠?"
혼잣말을 하며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는데 왠지 그의 눈꺼풀이 부르르 떠는것같았다.
효정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아니, 다시보니 잘못본거 같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그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머어머.. 놀라잖아요.. 깜짝이야.. 그렇게 사람을 놀리키시면 안돼요..
대한오빠 맡은지 이제 한시간도 안됐는데 사고치면 안되잖아요.
온지 하루만에 짤릴순 없다구여. 저 엄마한테 사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일 그만두면 안돼요.
울엄마가 보험회사다니시면서 어렵게 날 키우셨다고여.. 이제 효도 하려는데 짤리면 되나여.
협조부탁드려요. 말잘들으면 프리미엄 포도당으로 갈아드릴께여.
좋아요? 어머어머.. 좋아죽으시네. 역시 몸에 좋은것들은 아셔가지고설랑..
자,자.. 확인할꺼 다했으니까 이따 오후에 봐여.. 효정천사는 물러갑니다.
대한오빠.. 화이팅.."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섰다. 첫환자에 대한 투지와 의욕이 넘쳤다.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해도 치료를 받고 나을 권리가 있다는 동아리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 뭐,, 죄가 나쁘지 사람이 나쁜가..